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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ART] 도시와 예술_공공미술 철거와 재배치

City & Art: demolition and relocation of public art 도시와 예술_공공미술 철거와 재배치

PUBLIC ART 2018년 5월호

● 기획 편집부 ● 글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

파리 로열 궁전(Palais-Royal)에 있는 다니엘 뷔렌(Daniel Buren)의 <두 개의 무대>는 1986년, 당시 문화부장관 자크 랑(Jack Lang)의 특별주문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철거 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2년여의 오랜 공방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시는 우리가 일상을 전개하는 공간이다. 변함없이 그곳에 있는 지하철역이나 건축물을 지표 삼아 다양한 도시생활이 펼쳐진다. 여기 저기 키 큰 마천루가 들어서고 밤낮으로 자동차의 불빛은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몰려다니고 사람들은 큰길에서 골목으로 혹은 골목에서 큰길 쪽을 바삐 움직인다.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도시공간 안에서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고 도시의 길을 따라 건축의 모퉁이 마다 시간의 켜가 쌓이면 도시공간의 우리의 기억과 만나 장소가 된다. 도시에서 장소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공간과의 애착을 형성하여 이를 통해 존재적 안정감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적 의미의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도시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적정밀도에서부터 지속성의 문제에 이르기 까지 도시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 의견들이 도시계획과 정책에 반영되어 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도시가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너머 장소가 되는 점을 상기시키며, 영감을 주는 도시공간을 위해 예술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공공미술이 의미를 갖고 꾸준히 장려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도시의 성장으로 건축물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공공미술이 설치될 수 있도록 정책으로 정해져 있고 수많은 공공미술이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 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지난 30 년 동안 도시에서 공공미술의 폭발적인 증가를 보았다. 공공미술 작품은 일정 규모 빌딩 앞이나 크고 작은 도시공원,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양적 팽창에 더해 오랫동안 건축물과 함께 존치될 수 있도록 시스템에 기록하여 공공미술의 관리와 감독까지 덧붙인다. 공공미술이 훼손되면 건축주에게 원상복구 명령까지 내린다. 이 또한 정책과 법규에 잘 반영되어 실행되고 있다.

말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풍요로운 도시공간을 만끽하고 있어야 한다. 건축물마다 영감을 주는 예술품이 서 있고 크고 작은 광장에는 조화로운 조형물이나 파빌리온이 들어서 있어야 한다. 이들이 모여 형성한 공간은 짜여진 도시일상의 지루함을 해소 시켜주고 매일매일 지나다니는 그 길은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때때로 활력을 주어 공간에 대한 애착과 소속감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도처에 널려있는 수많은 공공미술은 위원회를 통과해 탄생하고 관련 공무원으로부터 주기적인 관리를 받지만 분명한 것은 작품의 질적 수준의 스펙트럼은 너무 넓다. 뛰어난 작품, 영감을 주는 작품, 지역 사회의 소속감을 만들어내는 작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공공과 도시공간에 기여하는 수준이 미미하다. 적지 않은 수의 작품은 그 공간에 있는 것이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방해가 된다.

더욱 험난한 현실은 도시공간에 도움이 안되거나 방해가 되는 공공미술을 철거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정책이 수립될 당시의 취지와 다르게 공공공간과 미술이 만나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발생시키고 있는 지점에 대해 현행 법규에서는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설치된 장소의 주변 여건이 변화하여 어울리지 않거나 불만이나 불편의 민원을 발생시키지만 다른 곳으로 옮기면 사람들의 호응으로 조화로운 공간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배치 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과 만나 유기체와 같이 숨쉬고 성장하고 쇠퇴하는데 공공미술만 영원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까?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Shibboleth> 2007 ‘The Unilever Series 2007: Doris Salcedo’ Photo credit: Tate Photography ⓒ Doris Salcedo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Sunflower Seeds> 2010 ‘The Unilever Seres 2010 Ai Weiwei’ Photo credit: Tate Photography ⓒ Ai Weiwei

공공미술정책을 먼저 시행해 온 서구의 여러 나라 관련규정을 살펴보면 영국, 캐나다와 미국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이미 설치된 공공미술품의 철거 혹은 재배치에 대해 규정을 상세히 적고 있다. 요약해 보면, 첫째, 공공에 의해 파손이나 일부 훼손되어 그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발현하기 힘든 경우, 둘째, 공공장소의 재개발로 재배치가 불가피한 경우, 셋째, 공공의 보건과 안전에 저해가 될 경우, 철거나 재배치가 논의될 수 있다. 영국의 버밍엄의 경우는 다른 미술작품과 지나치게 유사한 경우에도 철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철거나 재배치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프로토콜도 세부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평가들은 기한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미술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영국 가디언지(The Guardian)의 칼럼니스트 인 조나단 존스 (Jonathan Jones)는 "예술은 언어이고 공공 예술은 공공의 말이다. ("art is language and public art is public speech) "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공공공간과 미술사이의 대화는 때때로 끔찍하게 지루하며 심지어 이기적이라고 꼬집는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철거와 재배치의 규정을 정하면 끝나는 일인가? 철거와 재배치도 근본적인 취지를 수립하여 이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행단계에서는 건축과 도시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함께 이뤄져야 하고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세부적인 원칙이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심의위원회 구성시 건축가나 도시계획가, 조경가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으나 심의방식에 대해서도 뚜렷한 프로토콜이 없어 논의와 판단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심의과정의 문제에 대해서 중앙정보는 자치와 자율을 내세워 관여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공공미술의 질적 저하는 계속되고 있다.

좀더 멀리 내다보면, 근래 해외 주요 언론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공공미술이 특정공간을 영원히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길지 않은 기한을 정해두고 설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임대설치 같은 경우로 실행되는 것도 좋은 방법니다. 한번 지어지면 상당기간 동안 도시미관의 구성요소가 되는 건축의 경우에도 사용 프로그램이 바뀜에 따라 외관이 변화하기도 한다. 도시변화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동시대성을 생각해 보면 공공미술의 영원한 존치 (몇 십 년 정도 길이의 기간을 포함)는 환경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건축에서 기능변화에 따라 내외부가 변화되는 것처럼 공공미술도 도시공간 프로그램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도시전체와 크게 나뉘어진 구역별로 일정한 시기마다 큐레이팅을 하여 재배치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변화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 공공미술의 효과를 극대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도시공간에 대한 유기적 대처는 이미 역사적인 선례가 있다. 도나텔로 (Donatello)의 마지막 작품 쥬디스와 호로페르네르(Judith and Holofernes)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다비드상과 교체되기 전인 1455 ~ 1505 년에 피렌체에서 3 번 재배치되었다.

동시대 도시에서도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런던 중심에 있는 트라팔가 광장의 네 번째 플린스(기둥이나 동상을 올려놓는 주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제4 플린스는 1841년 영국의 왕, 윌리엄 4세(1735 – 1837)의 동상을 세우기 위해 건축가 찰스 베리경 (sir Charles Barry)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러나 재원조달의 어려움으로 동상제작은 무산되어 빈 동상 좌대로 남겨져 있었다. 이후 150년뒤 해마다 다른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선정하여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중요한 공공미술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후보작을 뽑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설치작을 발표하고. 선정된 작품은 설치 후 런던시장이 참석하는 개막식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다. 또한 “빈 플린스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학생공모전도 개최한다. 트라팔가 광장이라는 런던의 핵심위치의 공공장소에 있는 이 플린스는 영국의 많은 학생들에게 공공미술을 생생하게 가르치는 훌륭한 소재이자 주제가 된다. 제4플린스 프로젝트의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 환경 장치로서 예술품 설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그 시점의 그 장소에 대한 예술적 해석을 공유하면서 이를 도시민이 공유하는 행사로 만든다는데 있다.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Nelson’s Ship in a Bottle> 2010

ⓒ Yinka Shonibare MBE Courtesy James Cohan, New York

런던 올림픽이 열리던 2012년에는 덴마크 예술가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예술가 드라그세트(Ingar Dragset)의 작품 파워리스 스트럭쳐(Powerless Structures)가 세워졌다. 올림픽이 열리는 시간과 트라팔가 광장이라는 공간이 잘 조화하는 프로젝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카트리나 프리쉬(Katharina Fritsch)의 코발트색의 수탉조각인 한콕(Hahn/cock)이 대중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2009년에는 앤소니 곰리의 원앤드아더(one and other)라는 퍼포먼스가 제4 플린스 위에서 1시간동안 연출되기도 했다.

그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작품은 흑인 예술가인 인카 쇼니베어(Yinka Shonibare)의 병 속의 넬슨군함(Nelson’s Ship in a Bottle, 2010)이다. 이는 거대한 투명 아크릴 병 안에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전투의 승리의 상징인 27개의 돛을 가진 배가 들어가 있다. 이 전투의 승리는 영국이 제국으로 들어서는 발판이 되었다. 역사적인 상징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져 도시맥락에 안에 세워지니 대중의 호응이 높았다. 이 작품은 트라팔가 광장의 제4플린스에 1년동안 전시된 뒤 국립해양박물관으로 옮겨져 영구 전시 되고 있다. 이에 드는 비용은 영국문화예술위원회의 5만 파운드와 자발적인 공공예술모금 38만 파운드로 충당되었다. 대중의 호응이 모금으로 이어져 다른 공간에서 영구 전시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도시와 일상의 상호작용 안에서 물리적 환경장치는 인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공공미술 또한 인간과 공간을 매개해 왔다. 세상에는 그냥 멈춰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전개된다. 그 과정에 변화는 필수다. 다만 예전에는 그 변화의 주기가 인간의 한 생애에서 체감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길었으나 작금에는 1년사이에도 여러 번의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경향은 도시에도 공간에도 일상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공공미술이 이제는 인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매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라도 기존의 공공미술 작품중 일부가 “예술”을 부끄럽게 하는 환경방해물이 될 수 있음을 잘 인지하고 공공미술의 작용시스템이 동시대성에 맞게 진화하여 우리가 도시공간 어디에서나 예술 본연의 힘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예술이 우리 일상에 좀더 깊게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 일상이 좀더 풍요로워지는 방법이다.

글쓴이 한은주는 공간건축에서 실무 후 영국왕립예술대학원(Royal College of Art)에서 ‘도시공간에서의 위치기반 인터렉션디자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그래프(SIGGRAPH) 2009’에서 건축과 미디어 아트가 결합된 작품을 발표했으며, ‘2011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초대작가다. 『SPACE』 편집장과 공간건축 이사를 역임했다. 최근 공공건축 최초 키네틱 건축인 목연리를 완공했으며, ‘세계건축상(World Architecture Award)’과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를 수상했다. 현재 ㈜소프트아키텍쳐랩의 대표, 한양대 겸임교수, 『SPACE』 편집위원으로 예술작업, 글쓰기, 디자인공학 등의 작업을 통해 혁신적 도시디자인과 건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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